90일、인턴기자 나부랭이 기자도 모르는 현장 취재@단독기사는 어떻게 막을 내렸나 2014/01/21 03:18 by 솔다

(일일퀘스트) S사 신임임원 만찬회 스케치 기사
(연계퀘스트) S사 신임임원 만찬회 낙종을 피하라
(만찬장 도착시 보상) S호텔 주변 맵 완성
(기사 제출 실패 시) .......ㅇ-<-<
(랜덤 보상) 홍보팀 명함 / 홍보팀과 식사 / 홍보팀과 폭탄주(--)
(미션 결과) "다시 시작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단독 기사를 썼다고 혼자 방방뛰었다. 만찬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던 12,3명의 기자들 중에 이 회사 부회장의 건배사를 직접 따낸 사람이 그 때까지 나 하나뿐이었다. 기자들은 호텔 로비에 홍보팀에서 미리 설치해 둔 펜스 밖에서만 알짱거릴 수 있었고, 임원들은 저들끼리 인사를 나누거나 빠르게 회장을 빠져나갔다.

내 머릿속에는 '건배사' 한 단어밖에 없었다. 만찬회가 끝나기 전에 홍보팀에서 공식적인 건배사 멘트를 말해줬는데, 나는 부장과 통화 중이라 현장에 있으면서도 듣질 못했다. 기자들이 아직 '건배사'가 있단 사실도 모르는 줄 알고 멘트따자마자 부리나케 지하철역으로 달려갔을 정도다.

이전에 건배사는 만찬을 주최한 주인이 생색내기 위한 한 마디였을 뿐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나 혼자만 먹고 싶은 어릴 적 얇거 평평한 동그란 뻥튀기였고, 방금 포장을 푼 햄에그 샌드위치였고, 생크림이 빵 면적만큼 올려진 허니레드이자 겨울에만 가끔 먹을 수 있던 전라도식 단골 식당 팥칼국수였고, 한 점 남은 삼겹살이었다.

아니, 실은 모든 기자들이 이름을 다 아는, 눈에 안보이면 홍보팀이 불안해하는 대박 특종 기자로 만들어 줄 당첨복권!!!!

여전히 집에는 빨리 가고싶고, 건배사도 알고싶어서 계속 멀거니 서있는데 악기를 메고 가는 여자들이 눈에 띄었다.분명 만찬회에서 오는 길이었다.

'헐, 역시 대기업. 돈 주고 부리는 직원하고 밥 먹는데 오케스트라도 불렀나보다.'

드라마 같은 장면이 쑥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엌! 저 분들도 만찬회 목격자잖아!'

언제 이야기 할 수 있을 지 모를 임원들을 기다리기보다는차라리 단원들에게 듣는 게 더 빠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단원이 대여섯명 지나갈 때까지 물어볼 엄두를 못냈다. 얘기 안하주면? 얘기 안해주면? 얘기 안해주면? 계속 그쪽 동향을 살피다가 멀리 사라지길래 그냥 막 뒤쫒아갔다.

그리고 올레!
올레!
올레!

지하철역 안에 있는 카페에서 차분하게 노트북으로 기사를 쓰려고 했는데 동대입구, 뭔가요? 왜 이러나요? 이미 호텔 로비를 떠나자마자 휴대폰으로 초고를 쓰면서 걸었던 터라 사진 보정이랑 데스크만 볼 수 있게 신문사 홈피에 걸어두면 됐다. 그 와중에도 누가 나보다 빨리 이 기사를 올릴까봐 초조함은 극에 달했다.

모처럼 일찍 퇴근한 부장한테 전화를 걸어 빨리 보고 승인 좀 내달라고, 나 단독 땄다고 혼자 설레발치면서 막 흥분했는데

나중에 지하철에서 더 붙일 이야기 없나싶어 홍보팀에 전화했다가 건배사 공식멘트를 듣게 됐다. 괜히 민망하고 전해 들은 부장의 급실망한 기색도 수화기 너머로 다 보였다.

진짜 진짜 신났었는데
뭔가 짜릿하고 춤 추고싶고 엄청 부자가 된 기분이고 내가 굉장히 대단한 존재로 생각되고
한 삼십 분 이상 그런 착각에 빠질 수 있어서 사실 좋았다.

내일부터는 진짜 일 잘하는 기자로 활약할 것 같았는데, 흑....


집에 돌아오는 길에
셜록 시즌3x3화가 떠올랐다.
과거를 숨긴 소중한 사람때문에 왓슨이 배신감에 몸을 떨며 분노하자

"네가 그 사람을 선택한 거야"
자극적이고
위험천만한
모험을 갈구하는
네 자신이
그 사람의 정체를
눈치 챘기 때문에
옆에 둔거야

라며 셜록이 냉정한 평가를 내리던 장면.

한 순간, 지난 두 달동안 왜왜왜 묻기만 했던
기자라는 직업의 매력에 대해 얼핏 빠져본 날이었다.


.

덧글

  • 솔다 2014/01/21 03:18 # 답글

    알고보니 다음 달이면 월급 세 번째 받더라구요, 고로 1월부로 3개월차!
댓글 입력 영역


통계 위젯 (화이트)

04
19
51396
skin by ma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