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재작년 #CA_종의 기원, 프롤로그 (2), 판타지, 습작 2015/05/28 06:26 by 솔다







종의 기원
by 강솔다






프롤로그

Oh God, We're stuck in 'Nerd-ville"

                                         WDY

 

(2)철화
 공벌레는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내가 발견하기 전부터 어떤 위협에 오래 시달렸나보다. 갑각류의 벌레는 자신을 한정없이 껴안았다. 그 주변은 깨진 모래알이나 마른 흙이 전부였다. 가끔씩 헤드버디의 깃털이 떨어졌지만, 먼지 한 톨 일으키지 못하는 미미한 현상에 불과했다. 마디마디 작은 몸을 감싼 방패엔 윤기가 돌았다. 제 시간과 목표와 세계를 작은 원 안으로 내모는 모든 틈이 멸종할 때까지 제가 가진 유일한 장기로 허공과 맞서는 것처럼 보였다.

 옆에서 잠든 비글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다. 지글도 꾸준히 씩씩거렸다. 그때마다 우리를 가둔 우리가 푸르르 몸을 떨었다. 선인장 군락지 안에 숲이 우거졌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가시방호벽을 제외하면 정상 부근에서 대부분의 지역을 한 눈에 파악할 만큼 울창한 산림지대였다.

 우리는 '전망대'라고 불리던 아주 좁은 대기실에 갖힌 상태였다. 알고보니 '솔'의 잔비늘을 강제로 들어올려 생긴 틈에 상대방을 밀어넣고 움직이지도 못하게 가둬두는 곳이었다. 이 덫은 몸 전체가 목질화된 햇볕 바라기 생물의 습성을 악용한 것으로, 일정 수치 이상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스로 몸을 터트려 산산조각 난다. 빛을 따라 움직이는 습성 상 고지대, 특히 높이 솟은 나무 정수리에 매달려 살기 때문에 용케 생체 폭발에서 살아남아도 추락사를 피하기 어렵다. 몇 번이나 이 부분을 강조했지만, 지글은 제 분에 못이겨 이마나 부리 따위를 창살에 부딪혀 끊어버리려고 했다.

 어느 새 검정 개미 한 마리가 나타나 공벌레에게 접근했다. 개미의 더듬이가 쉬지 않고 움직였다. 해가 뜬 이래 아직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탓에 초조해 보였다. 일개니는 다짜고짜 두 다리를 잘 닦인 방패 위에 올리더니 몇 번이나 두드렸다. 발자국 하나 남기지 못하는 몸이라 공벌레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 게 틀림없었다. 여전히 팥알 같은 방패막이 생물은 머리와 꼬리를 맞댄 채 굳게 닫혀 있었다.

일개미는 잠시 멈춘 상태에서 더듬이를 교차했다. 이번에는 공벌레와 흙 사이에 머리를 쳐박고는 그 둘레를 빙 돌며 샅샅이 수색했다. 다시 고개를 들고는 공벌레의 등 위로 다리를 하나만 걸친 채 다른 앞다리로 목표물을 들어올리려고 애썼다.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접근하며 포획을 시도했다.

 생존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공벌레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들 사이의 거리는 겨우 공벌레 두 마리를 이어붙인 정도였다. 낯선 생물의 출현에도 셋은 서로에게 무관심했다. 개미는 눈 앞의 공벌레를 다리 힘만으로 들썩이는 데 성공했다. 이쯤되니 저 벌레가 훨씬 전부터 죽어있던 게 아닐까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뭘 그렇게 유심히 봐?"
 "별건 아닌데, 그냥."
 "설마 놈들이 재판인가 뭔가 벌릴 때까지 마냥 여기 잡혀있을 건 아니지?"
 "내 머리 하나도 가누기 힘든데?"
 "넌 도대체 왜 사냐?"

 지글에게 반박할 기회도 없이 솔의 잔비늘이 사방에서 죄어들어왔다. 더이상 우그러질 곳도 없다고 발버둥치는 동안에도 공간은 자꾸 좁혀들어왔다. 몇 십년 전 이미 부수고 나온 알 속에 산 채로 끌려들어간 기분이었다. 우리는 인간들의 낭만 소설에 등장하는 기사들처럼 강제로 이마와 부리를 맞댔다. 심지어 어깨깃이 내 귀깃에 닿을 정도였다. 이대로 솔과 함께 작살나는 건가 싶어 잔뜩 겁에 질렸다. 여러 갈래로 찢어진 내 일부가 다른 솔과 잎새, 가지 사이사이에 내걸리는 상상에 내 정신마저 꽉 끼어 도망치지 못했다.

개미와, 공벌레와, 여왕개미와 그것의 날개가 지닌 가치와 흙 위로 그림자도 기울이지 못하던 그들 존재의 무게와 뼈가 어긋나는 고통. 그리고 왜 사냐고 빈정거리던 지글의 목소리, 목소리, 목소리. 차라리 누군가 이 솔을 빨리 밟아 터뜨리라고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밖으로 새어나오는 건 눈물뿐이었다. 따스하게 볼을 어루만지더니 그것들 중 몇몇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잔비늘 사이에 작은 틈으로 달아나버렸다.

 "뭐, 뭐, 일단… 이, 이 정도 선에서 봐줄까?"

 수정 픽시였다. 지글이 한 번 삼켰다가 토해낸 수집품이었다. 등 뒤로 몰고 다니는 빛무리때문에 제대로 눈을 뜨기가 어려웠다. 용케 살아난 주제 열기가 피어오르는 커다란 자루를 안은 채 솔 주변을 얼쩡거렸다. 제 몸을 뒤집어쓰고도 남을 만큼 넉넉한 주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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