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재작년 #CA_종의 기원, 프롤로그 (1)-2 판타지, 습작 2015/05/23 06:26 by 솔다




종의 기원
by 강솔다






프롤로그

Oh God, We're stuck in 'Nerd-ville"

                                         WDY

 


(1) 철화
 "비글, '제로 칼로리' 지금도 있어? 바도티 픽시가 헤드버디 참살용으로 뿌렸던 거 있잖아."
 "네가 멀미약을 주면 가르쳐주겠다."
 "없…는데?"
 "생기면 바로 알려줘. 그 전까진 내 옆에서 네가 가진 멀미약처럼 행동해. 없는 듯이 거슬리지 않게. 너한테만 부탁할게."
 
 바도티 픽시는 천적인 헤드버디를 뿌리 뽑을 목적으로 '제로 칼로리'를 발명했다. 당시 우리 조상들은 인간만큼 픽시 '수집'에 열광했다. 수정 픽시들은 날이 갈수록 치솟는 인기에 멸종 위기가지 몰렸다. 동맹을 맺었던 바도티 픽시가 피해를 줄이기 위해 나섰고 암암리에 '바도티 제초제'라는 이름으로 독극물이 나돌았다.

 알을 깨고 나오기 전부터 헤드버디들은 서로 다른 욕망을 가진 세 머리로 양 날개와 두 다리를 나눠쓰는 법을 배워야 했다. 우리 종족은 특히 성장기 동안 엄청난 세포 재생력을 자랑한다. 머리가 떨어지고 목이 꺾여도 2, 3시간 안에 다시 자랐다. 심지어 이전 머리가 신체로부터 끊어지기 직전까지 습득한 정보를 고스란히 가지고 단정한 얼굴에 상처없는 부리로 떠들어 댄다. 인간들이 불사로 오인해 여러 목적으로 사냥에 나섰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신체적 능력은 한 여름 소나기처럼 어느 순간 뚝 그친다. 그들 자신이 아니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준으로 '헤드'를 정해 나머지는 죽은 나무뿌리처럼 메말라 떨어진다. 우리 외에는 누구도 알아서는 안되는 비밀이었다.  결론적으로  픽시들은 포식자들의 머리를 제 몸에서 완전히 격리하는데 성공했지만 , 죽이는 데 실패했다.

 "아나, 이거 참. 기글, 아무래도 나 또 속았나 봐. 아부지한테."
 
 나는 하늘을 올려보며 어깨 근육을 풀었다. 저 망나니가 우리 셋의 피로를 허락도 없이 쌓아올리고선 뒷처리를 떠맡기려고 하는 게 분명했다.

 섬 구경을 마친 지글이 처음 내려앉은 자리로 돌아왔다. 털썩 주저앉았다가 꽁지깃을 망가트릴 뻔 했다는 이유로 비글에게 부리를 한 번 물렸다.

 "그래, 이거 완전 '쪼아먹고 보니 달수박'이야. 들은 거랑 완전 달라. 오, 나 방금 어려운 말 썼다. 비글, 나 방금 네가 가르쳐준 말 써먹었어."
 "…멀미약! 없으면 그 다음은 기글에게 듣거라."
 "…"

 요약하자면 보라성게 섬에 가면 산호군락지가 된 거대 게의 별똥별을 발견할거라고 아버지가 꼬셨고, 비글이 반발할 걸 뻔히 알면서도 또 나에게 의사도 묻지 않고 무작정 긴급 대피용 비상구에서 날개를 폈다는 얘기였다. 지글과 나는 수신호와 돌멩이에 쓴 문자로 정황을 파악했다.

 한 번 이소하면, 성장기가 끝나기 전까지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게 우리 종족의 규율로 지켜져왔다. 섬 중앙에 가시로 뒤덮힌 엄청난 규모의 방호벽을 넘어야만 했다. 우리가 방호벽 너머 너드빌로 들어가 신의 세계로 입성하는 게 아버지가 세운 계획이었다.

 "도대체 우리가 거기 가면 뭐가 좋은 거?"
 "글쎄, 아버지가 차기 족장이 되나? 우리 빽으로?"
 "엄마는 그런 거 완전 싫어하잖아. 하고 싶어도 안될 걸."
 "어차피 우린 갈 데도 없다."
 "난 완전 많은데? 훔쳐서 팔고 싶은 것도 많고. 잡고 건져서 팔고 싶은 것도 많고. 일단 '사농바치의 도검'부터 찾으러 갈까?"

 기글은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듯이 두 다리를 뒤뚱거렸고, 날개를 가슴 앞쪽으로 크게 모았다가 폈다. 나는 인상을 쓰며 부리로 우리가 잘 아는 한 버디의 뒤통수를 가리켰다. 비글은 앓는 소리를 내며 좀처럼 나아지는 기미가 없었다. 그동안 지켜본 바에 따르면 꼬박 하루동안은 계속 이런 상태에 머물렀다. 

 "정말 있을 거라고는… 앞으로 얼마나 더 올려는 거지? 나, 난 남쪽 문지기 피, 피코키. 일단, 하,할수없이, 너희를 안으로 들여야 해. 하아."

 꽃나무도 없는 데 어디선가 아카시아 향기가 은은히 풍겼다. 몸이 먼저 반응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등 뒤에는 자색 가시덩쿨 군락지가 위용을 자랑했고, 정면에는 반짝이는 잔물결로 꽉 들어찬 바다였다.

 목표도 없이 몸이 제 멋대로 바다를 향해 달려나갔다. 옆을 보니 지글이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무서운 속도로 뛰었다.

 "오예, 픽시, 수정 픽시다!"
 "오, 오지마. 아니, 데, 데려가야 하긴 하는데……."
 "내가 찜. 먼저 발견한 버디가 임자, 퉤퉤퉤."
 
 상대가 수정 픽시라면 비글도 손 쓸 도리가 없었다. 광적인 수집가는 물에 젖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찰박거리며 더 깊고 눈부신 곳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피코키의 위치를 알지 못해 지글이 이끄는 대로 무작정 끌려다녔다. 물의 깊이는 뒷발목뼈가 잠기는 정도였다.

 "나, 진짜 모르겠어.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거야?"
 "알려주면 앞으로 볕 드는 창가 쪽 자리, 나 줘"
 "지글이 떼쓰면 세 번 정도 편 들어줄게."

 찬 물에 몸을 담그고 있어서인지 비글도 어지럼증에서 조금이나마 발을 뗀 모양이었다. 별로 좋지 않았다. 
 
 "깃. 저쪽에 한 주먹 흘린 씨앗처럼 햇빛이 다글다글 모인 곳 보여?"
 "어? 어, 아마도?"
 "저 속에 수정픽시가 숨어서 유난히 번뜩이잖아. 몸체가 광물 결정체로 이뤄져서 빛을 받으면 유난히 긴 빛무리를 달고 다닌다고 그건 네가 알려준 거잖아."
 
 드디어 나도 피코키를 눈으로 확인했다. 발로 청벙거리며 물을 차던 게 어느새 넓적다리까지 물 속에 잠겼다.

 "같은 걸 보려면 우선 방향부터 맞춰, 제발. "
 "어차피 네가 그 말 해줄거 아는데 굳이 내가 기억을 해야 해?"
역시 비글은 빨랐다. 나는 멱을 크게 물렸다. 저절로 눈물이 찔금했다. 벗어나려고 고개를 비트는 순간, 옆눈으로 지글이 크게 벌린 부리를 앙다무는 모습이 들어왔다. 무얼 삼키는 듯 보인 순간 몸이 급류에 휩쓸렸다. 정신이 멍할 정도로 물살이 빨랐다. 파도가 치면서 가슴 위로 물방울이 튀었다. 지글이 무엇때문인지 신나게 웃어제꼈고, 비글은 그의 뒷머리를 쪼며 날아오르라고 고함쳤다.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일인데도, 소리가 퍼지고 갈라져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었다. 비글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동굴 안쪽에서 울리는 소리를 입구 바깥에서 들으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수평선이 펼친 책의 중심처럼 보였다. 고요한 세계라는 생각도 잠시, 몸이 휘청이더니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아래는 믿기 어려울 만큼 까마득한 어둠,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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